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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에세이

지은이 | 신이현
페이지 | 216쪽
가 격 | 13,800원

 
 


 
 

“열대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상야릇한 과일들을 먹으면서 이상야릇한 생각을 했다고.”

 
 

작가 신이현이 캄보디아에서 전하는
열대를 보내는 다섯 가지 방법
 
 

프랑스 파리에 살면서 드물게 작품을 발표해오던 작가 신이현이 본격적인 국내 복귀를 위해 바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얼마 전 이야기가있는집에서 출간한 《루시와 레몽의 집》에 이어 이번에는 캄보디아에서 6년간 머물렀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루시와 레몽의 집》에서는 알자스에 사는 시부모인 루시와 레몽의 소박하고 따뜻한 삶을, 《에펠탑 없는 파리》에서는 자신이 살아가는 파리 뒷골목의 일상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삶의 무대를 캄보디아로 옮겨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찬찬히 바라본다. 
 

작가에게 열대는 그저 더운 나라가 아니라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닮은 과일들이 있고, 그 과일들로 이어진 다양한 삶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 왔든,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았을지라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에 자신의 욕망에 보다 충실해지고, 스스로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열대, 작가가 경험한 다섯 가지 열대의 모습이 냄새, 공기, 태양, 비, 모래 먼지,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이국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진다.
 
 
 
 

 


 

 
잭프루트, 망고, 두리안, 용과(불꽃씨), 그리고 파파야…
열대 과일로 명명된 5인이 함께 보낸 열대 탐닉의 나날들
 
 

작가는 책을 준비하면서 지인들에게 ‘열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적도 근처의 뜨겁고 건조한 땅이 생각난다고 대답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바싹 말라 버린 땅, 사막에 부는 황량한 모래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텅 빈 땅에 사는 고독한 사람들의 인생이…. 
 

그러나 작가가 겪은 열대는 그런 적도의 열대와는 전혀 달랐다. 황량한 바람이 불지도 않았고, 쓸쓸하게 텅 비어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각기 다른 맛을 뽐내는 열대 과일 냄새가 있었고, 우기의 비 냄새와 건기의 먼지 냄새가 있었고, 정전의 밤 모토가 뿜어내는 매연 냄새가 있었고, 강변의 황혼과 연꽃으로 뒤덮인 들판과 끝없는 코코넛 나무들이 드리운 그늘 냄새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땀 냄새가 있었다. 
 

작가는 이런 열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잭프루트, 망고, 두리안, 용과(불꽃씨), 그리고 작가 자신인 파파야, 이렇게 다섯 명을 등장시킨다. 작가가 즐겨 먹던 열대 과일의 이름이자, 작가가 등장인물에게 붙여 준 별명이기도 한 이들은 어느 작은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다. 어딘가 조금은 불안정하고 세상이라는 바삐 돌아가는 수레바퀴에서 잠시 내려선 이들이다.  
 
 
잭프루트는 잘나가는 회사원이었지만 어느 날 삶에 회의를 느끼고 무작정 엄마 품을 떠났고, 
프랑스인인 망고 아저씨는 일만 하는 사람들에게 질려서 마을을 탈출했고,  
두리안은 사랑하는 애인을 되찾고자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왔고,  
용과(불꽃씨)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러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에서 이곳 열대까지 날아왔다.  
 
그리고 나 파파야는 프랑스인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서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남은 시간은 호텔의 수영 정기회원권을 끊어 수영을 하면서 조금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진 다섯 사람이 수년간 한 수영장을 중심으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열대의 한때를 함께 통과한다. 함께여서 외롭지 않고, 함께여서 불행하지 않은, 그러니까 이대로 있게 내버려둬. 다섯 사람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삶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 신이현이 열대에서 찾아낸 5感 
 

_보다 

잭이 노란색 빛을 씹으며 천진하게 웃었다. 과일 조각이 아닌 햇살을 씹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순간 그가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별로 음흉하지 않은 그저 은은한 그런 입술, 잭프루트 맛이었다. 사랑도 욕망도 그 아무것도 아닌 입맞춤, 그냥 태양 아래서 잭프루트를 먹을 때 치러야 하는 예의라고나 할까.(52쪽)
 
 

_듣다 

바람이 불고 나면 알 수 없는 새들이 날아와서 미친 듯이 울기도 했다. 황혼이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고 나면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수영장 위로 물을 튀기며 날아올랐다. 이제 건기가 끝나고 곧 우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신호였다.(172쪽) 
 

_맡다 

그의 손에서 망고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농익어서 터져 버린 망고를 쭉쭉 빨아 먹은 뒤 손도 씻지 않고 온 것 같았다. 손가락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망고 냄새가 났다. 망고 냄새가 찐득하게 밴 땀 냄새였다. 밤새 망고 땀을 흘리는 처녀의 몸을 만지고 왔는지도 몰랐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62-63쪽)
 
 

_맛보다 

파파야는 속살이 황혼빛이다. 맛도 황혼의 맛이다. 아니, 황혼에 이르러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과일이라고 해야 할까. 잘 익은 파파야는 손가락을 대면 껍질이 허물어지면서 살 속으로 쑥 들어갈 정도로 부드럽다. 붉은 오렌지색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 일을 어찌할까. 빨리 먹지 않으면 이제 곧 썩어 버릴 것이다.(181쪽)
 
 

_만지다 

보들보들하고 하얀 속살이더군요. 뭐라고 할까요. 조금 전에 들어갔던 깊은 자궁을 떠올리게 하는 미끈거림, 따뜻함, 촉촉함, 부드러움, 향긋함, 짜릿함…… 발톱이 더러운 그 여자애…… 내 주머닛돈을 홀랑 다 뺏어 가버린 못된 창녀였지만 또다시 돌아가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코코넛 통을 던지고 미친개처럼 헐떡헐떡 달려갔죠. 그러니까 바로 그 맛이라는 거죠. 향긋하고 부드럽지만 무척이나 퇴폐적인 맛이죠.(21-22쪽)

  
 
 


 

 
| 신이현 

소설가. ‘구름’과 ‘바람’의 유전자를 지닌 신이현이 프랑스 알자스와 파리에 이어 이번에는 캄보디아로 향한다. 시부모인 루시와 레몽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식탁이 있는 알자스, 친절한 시내 안내지도 대신 지하철 정기권과 운동화, 커피 혹은 국수 한 그릇 값을 들고 떠나는 파리 뒷골목 기행에 이어 열대의 나라 캄보디아에서 6년간 머물렀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한 호텔의 수영 정기 회원권을 끊은 장기 체류자로서 열대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간다. 지구 어디에선가 온 나를 포함한 다섯 사람은 열대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수영장의 파라솔 아래로 모여든다. 그리고 방황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쾌락에 빠지거나, 생의 마지막을 불태우거나, 우기의 비가 쏟아진 뒤에 자전거를 타면서 열대의 한때를 함께 통과한다.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 짧지만 아름다웠던 열대에서의 순간들이 작가의 손끝에서 유려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1994년 장편소설 《숨어 있기 좋은 방》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갈매기 호텔》 《잠자는 숲속의 남자》, 에세이 《루시와 레몽의 집》 《에펠탑 없는 파리》, 번역서 《에디트 피아프》 등을 펴냈다.

 
 
 
 
 


  

| 저자의 말 

나는 이상하고 야릇한, 참으로 많은 열대 과일을 맛보았다. 황홀한 맛이었다. 영하의 맹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은 사계절 과일들의 달콤함에는 딱딱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런 과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만 차갑고 전투적인 성향이 강했다. 반면 열사의 과일들에는 뜨거운 즙이 흘렀고 부드러웠다. 먹는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달콤함에 취해 가는 그 순간이 좋기만 했다. 이것으로 끝, 그러니까 말 시키지 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수영장에 누운 5인이 그랬다. 그들은 진정 열대 탐닉자들이었다.